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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영화를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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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화를 좋아한다.

극장을 가고, 집에서 스트리밍으로 보고.

이제는 대여점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엔 용돈의 대부분을 비디오와 DVD를 빌려보는 데 모두 썼다.

 

그렇다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영화 감독이나 영화 평론가, 혹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영화를 보는 게 즐거울 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취미라고 말할 만한 것도 없는 내게, 언제부터 이렇게 영화가 크게 자리 잡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주 어렸을 때엔 시골에 살았었다. 몸이 약한 탓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을 나가야 읍내가 나왔다.

그 곳에서 빌려보는 비디오만이 유일한 놀이거리였다.

후뢰시맨, 바이오맨, 스필반 같은 특촬물들. 그리고 라이징오나 다간같은 각종 변신로봇이 나오는 게 좋았다.

한 번에 두 개씩 빌려와서는 또 보고 또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렸을 때 부터 밖에서 뛰어논다는 생각은 일절 안했던 거다. 

 

조금 더 자라서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아직은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부를 때였다.

하루는 엄마 손을 잡고 멀리 극장으로 가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 때는 극장이 남포동에만 있었던 때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고, 좁지만 밝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룡을 보았다.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내 인생 처음 극장 영화였다.

그 때의 흥분이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다만 명절이 아닌 날에도 오래 버스를 타고 갔다는 것, 훌쩍 커버린 지금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없는 엄마와의 데이트였다는 것들이 지금도 그렇게 특별한 추억처럼 남아있나보다.

 

이모와 함께 또 극장을 가서 봤던 라이온킹,

외가집에서 명절 특집으로 외숙모와 함께 TV로 봤던 사탄의 인형,

중학교 때 학교에서 반친구들과 함께 비디오로 봤던 타이타닉,

방학때 비디오 6개를 쌓아두고 혼자 봤던 스타워즈,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서 봤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

어쩌다 아내와 처음 극장에 가게 돼서 봤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처음으로 내 DVD를 사보았던 공각기동대.

이렇게 가족이나 친구, 아내와 즐거웠던 시간을 보낸 기억엔 주로 영화가 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나누는 취미가 되었다.

함께 영화관에 들러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세상 편하게 누워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기 전엔 영화를 보면서 뭘 먹을건지 고르고,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챙겨야했던 정보는 없는지 뒤적인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선 재미있었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이 감독이나 배우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보자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시간들이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여기까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니, 영화를 보는 게 내 인생에서 느끼는 즐거움 중에 하나였던 거네.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기억,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시간, 이 모두가 영화보는 시간에 담겨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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