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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 제주 4.3을 민중사로 그려낸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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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Wfyw_e8-aE

 

좋은 텍스트

좋은 텍스트란 무엇일까요.

정말 많은 답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행간을 잘 파악할 수 있게 설계된 텍스트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콘텍스트라는 단어가 더 쉬운 분도 계시겠군요.

콘텍스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의 장점은

'잘 즐기고 있다'는 경험을 주는 것이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떠오르는데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론을 다룬 주제의식도 걸출했지만

미장센이라든가, 카메라 구도, 화면 배치와 같은

콘텍스트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었죠.

한 가지 좋은 예가 바로 떠오르는군요.

비오는 날 기택의 가족이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

이 장면 하나로 물이 흐르는 모습,

화면 가득 보이는 수직적인 공간,

계단을 통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주인공들.

이 많은 콘텍스트를 어렵지 않게

읽어내셨을 거예요.

이 때, "나 영화 평론 좀 되는 듯!"

이란 생각이 들죠.

이런 경험들은 이 영화 한 편에 대한 애정을 넘어

다른 영화 전반에 흥미를 갖게 해주죠.

기생충을 보셨다면 적어도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 

혹은 비슷한 다른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되셨을 겁니다.

아니면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은 

여러 영화제들에 대해 관심도 갖으셨겠죠.

콘텍스트를 잘 읽어내는 경험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확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이런 깊이를 표현하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실제로 뚜렷한 주제의식을 표출하는,

이 하나만 성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콘텍스트를 배치하고자 해도

너무 선명하게 들어내면 뻔하고,

너무 깊숙하게 숨겨두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적절한 선'에 대한 고찰과 집착이

아마 거장을 가르는 선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저의 기준 좋은 텍스트에 충분히 들어가는 책이에요.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곰사장입니다.

북극서점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무 말이나 해볼 책은

현기영 작가님의 제주도우다입니다.

2023년 북극서점 올해의 책 후보를 소개합니다.

 

이 책이 정말 좋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4.3이라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부의 가혹한 폭력과 이름없이 쓰러져간 무고한 목숨들을 

잊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지요.

이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이 책이 훌륭한 점은 

작가가 독자를 정말로 배려하며 책을 쓴 게 느껴지고

그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독서라는 행위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열심히 설명했었던 

좋은 텍스트의 조건을 갖춘 책이죠.

 

제주도우다

제주도우다는 총 세 권입니다.

일제강점 말인 1943년부터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1948년 겨울까지의 

제주를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열고, 핵심 서사를 끌어가는 

안창세라는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

제주도 조천리의 주민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1권은 일제강점기 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1943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가 진행됩니다.

사람이며, 말이며, 입고 먹을 것 까지 

일본이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수탈했는지,

그리고 연대와 유머로 그 고통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1권의 분위기는 슬프지 않습니다.

죽을 정도로 힘들지만 슬프지 않아요.

광복이 가까워졌다는 느낌,

광복 후에 멋진 나라를 만들어보겠다는 열정,

광복을 맞이하게 된 제주가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1권 표지의 파란 빛은 새벽 빛이란 생각이 듭니다.

광복 직후의 희망을 표시한 것이죠. 

 

2권은 광복 직후부터 1947년까지, 

3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광복을 맞아 먼 타지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일본인과 친일파를 몰아내는 자치단체의 이야기, 

민주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이 자리잡거나, 

제주까지 들려오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소식,

서북청년단의 제주 입도까지.

광복의 흥분에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당시 정치 상황이 

제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펼쳐지죠.

2권의 표지느니 초록색 하늘 빛입니다.

혹시 초록빛 하늘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아시나요?

폭풍이 오기 전, 혹은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햇볓이 초록색으로 산란하면서

하늘이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4.3 사건 직후의 제주는 그야 말로 폭풍전야였는데요.

2권의 표지 색깔은 이 당시의 제주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권은 1948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예견된 비극이 풀어집니다.

읽는 내내 먹먹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제주를 훑고간 정부, 일본, 미군정의 커다란 폭력은

너무나 잔인하고 무자비했어요.

작가님께서 일부러 슬픔을 절제하며 쓰려하셨다하고,

사람들의 죽음이 선정적으로 다루어지진 않지만

큰 슬픔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님은 책 앞에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을 남겨주셨는데요.

과연 이 이야기 속에서는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3권은 정말 그 정도로 가슴이 아팠어요.

3권의 표지 색깔은 주황색인데요.

노을, 어스름을 표현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눌러붙은 피 색깔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함께 기억함으로써

책장을 덮고나서도 한참을 

작가의 말을 계속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의 어느 곳에서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살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인가를 계속 생각했죠.

그리고 내린 답은 바로 '기억'입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작품으로 남겨놓은 작가의 노력,

그리고 그 작가의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기억하겠다는 작은 다짐을 두는 독자의 의지가 있죠.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함께 

상처를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살만한 가치 아닐까요

4.3사건도, 광주 민주화운동도, 

세월호도, 용산4구역 화재사건도, 이태원 압사사고도

잊지 않음으로 버티고

함께 기억함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앞서 좋은 텍스트의 조건은

행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설계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영화, 게임에선 이런 경험을 꽤 했던 것 같지만

문학에선 이런 경험을 쉽게 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색다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텍스트를 보는 사람에게 콘텍스트를 잘 들어내는 건

전적으로 제작자의 역량이며 배려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주제의식을 담기에도 정말 버거우셨을 텐데,

읽는 사람을 참 많이 배려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문장과 단락이 정말 환상적입니다.

형식의 변주와 감정의 흐름이 정말 대단한데요.

노랫말, 시, 제주설화가 작품에 포함되어 있고 

이야기의 흐름과 대화 파트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도 한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정말 여러 사람을 조명하는데요.

철 없는 사랑 이야기, 삼각관계, 여성 권리 운동, 

광복 직후의 사상의 대립이나

학생과 스승, 제주의 해녀 등 정말 많은 역할, 인물들이 나옵니다.

 

마치며

4.3 사건이 주제라면 정말 한없이 가라앉을 수 있죠.

3권은 정말 그 압박감에 문장이 넘어가지 않았는데요.

노랫말, 시, 설화에선 조금 쉬어가며 문장을 넘기고

대화에선 감정적으로 가라앉더라도 눈으론 빨리 넘어갈 수 있었죠.

1권에서 광복을 맞아 좀 더 나은 나라로 발전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성장과 상승감을 읽고,

2권에서 혼란을 함께 읽어가며 가라앉을 감정의 준비가 없었다면

3권의 너무나 무거운 하강을 버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글의 형식, 인물, 사건으로 무게를 버티게 만드신

작가님의 글 솜씨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제주도우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현기영 작가님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4.3사건에 관한 책은 그만 쓰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80을 넘기신 현기영 작가님의 다음 책을 기대하지만,

4.3사건을 기록한다는 점에선 

이 책에서 충분히 모든 노력을 다 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함께 기억하고, 

더욱 연대하는 건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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