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H마트에서 울다 - 한 번은 꼭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

반응형

내용을 요약하고 싶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전체의 흐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요약해버리면 그 맛이 사라지는 책들이 이죠.

어린왕자, 앨저넌에게 꽃을 같은 소설들이

제겐 그런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도, 

요약하고 싶지 않은 책이 되었습니다. 

책의 처음에서 마지막까지, 

엄마의 죽음을 겪어낸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 따스하고 아름다워서

책을 다 읽고 덮고난 후에도 가슴 한 구석이 

참 오래도록 따뜻했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한인 2세예요.

아빠가 미국인, 엄마가 한국인이죠.

H마트는 한아름마트에요.

미국 내 한국식 마트죠.

엄마가 말기암으로 돌아가신 후,

H마트에서 엄마가 요리할 때 쓰던 재료를 살 때,

엄마가 사주었던 뻥튀기를 어느집 아가가 사갈 때,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난다는 문장을 줄여

제목이 완성된 것입니다.

 

작가는 1살때부터 미국에 살아

사실 미국인인 셈입니다.

다만 가족에게 헌신적인 엄마가

딸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불어넣어줍니다.

어머니 당신이 여전히 한국식의 삶을 살고,

사랑과 자부심을 가득 담아 한국식 식사를 만들어주셨죠.

딸과 함께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있는 친정에서 며칠씩 보내다 오기도 했구요.

 

하지만 작가가 스물 다섯이 되던 해,

작가의 어머니는 말기암 판정을 받으셨고

이 책은 그 이후부터의 투병, 사별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냥 사이좋은 모녀지간은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잘못이 아이와의 거리를 벌리듯이,

너무 선을 나가버리는 아이에겐 

부모도 거리가 생겨버리죠.

이 책의 작가도 너무나 예민한 사춘기로 인해

엄마와의 거리가 많이 벌어진 상태였어요.

 

하지만 엄마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시간이 부족하단 걸 느낀 작가는 

최고의 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엄마와의 거리를 좁히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 거리를 좁히려는 작가의 노력과

솔직한 회고가 계속 눈물샘을 건들여요.

 

가족의 상실이라는 소재 탓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어린 사촌 동생이 떠올랐습니다.

 

혈액암이었습니다.

불치와 난치, 

버틸만한 하루와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시간,

그 사이를 오고가다가

결국엔 어린 나이에 먼저 돌아갔어요.

 

그리움은 정말 몹쓸 감정입니다.

이젠 얼추 무뎌졌다고 생각이 들어도,

교복 입은 여자애들을 볼 때면 가끔,

그리고 애플 로고에 불이 들어오는

구형 맥북을 볼 때면 동생이 불현듯이 생각납니다.

 

동생이 맥북을 쓰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맥OS는 쓰기어려워서 

윈도우를 써야겠고,

집에서 그나마 맥을 만져본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제가 윈도우를 깔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부트캠프 설치가 그렇게 어렵더라구요.

하필 오류가 많이 나서 쉽게 설치가 되지 않았어요.

 

부트캠프를 설치해주든,

지금이라면 맥OS를 가르쳐주든,

하다못해 윈도우 노트북을 새로 사줄 수도 있는데,

그 땐 윈도우 설치가 빌어먹게도 힘들었습니다.

사과 마크에 불 들어온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좀 더 편하게 쓰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움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젠 극복했다고 생각해도,

어떤 트리거만 당겨지면 하루 정돈 우습게 무력해집니다.

 

작가가 비슷한 감정을 묘사하고 공유해준 덕분에

이 책을 좀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H마트에서 간장을 집다가,

뻥튀기를 사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엄마가 생각나서 울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그리움이란 감정이 보편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워하는 방법이나 

그리운 이유가 모두 다르더라도,

그리움이란 감정은 쉽게 공유되고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엄마를 잃은 그리움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문장들입니다.

엄마를 잃은 그리움을

된장찌개, 기치같이 늘 먹던 음식으로,

마트처럼 흔히 가는 곳으로 

풀어냅니다.

기일이나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여행같은

특별한 하루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늘 있던 하루에서 떠오르는 그리움이라

더욱 깊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두번째는 미국에서 혼혈한국인이란 소수자란 입장입니다.

덕분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특히 부모가 나의 정체성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전 여태까지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오이가 싫다’ 등등, 

저 스스로를 수사하며 정체성을 설명했어요.

 

그런데 저자는

‘엄마가 죽으면 내가 한국인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전 단 한번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저의 정체성을 정의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친구

이 것도 정말 중요한 저의 정체성인데 말이죠. 

이 책 덕분에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로 정의되는 저의 정체성을 고민해볼 수 있었어요.

 

마지막 하나는, 

작가는 그리움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해주었던 요리들을 따라하기도 하고,

자신의 본업을 열심히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묻고 

그냥 흘러간 대로 삶을 사는 저와 비교하면,

그리움을 양분으로 무언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작가의 모습은 정말 멋져보입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으셨던 분이라면, 

혹은 그리운 누군가가 있으신 분이라면,

특히 어머니가 그리운 딸의 입장이시라면,

이 책이 커다란 위로가 되실 것 같습니다.

저도 큰 위로를 받아서 많은 분들께 추천해드리고 싶었어요!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잘쓴 글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건 동영상 세대에 왜 책을 읽어야하는지와 

맥락이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잠깐 책장을 덮고 내 이야기를 꺼내어보는 것.

 

영화나 게임은 모두 끝나기 전까진

그런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책은 읽는 도중에 언제든

떠오른 감정이 식기 전에 추스릴 수 있는 것.

그게 독서만이 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잘 쓴 책이고,

좋은 책이었습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