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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보내주지 않음에 작별하지 않는다. 계속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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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21

 

사진 : Matthew Henry on Unsplash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난 후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개요적으로 아는 것은

역사의 상처가 개인을 어떻게 지나갔는지,

심지어 아직도 아물지 않은 고통이 있다는 것과

너무나 달랐죠.

거기에서 나오는 죄책감, 슬픔때문에

하루종일 아팠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나온 채식주의자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도,

흰도, 작별도 모두 피했어요. 

 

그러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읽게 된 건

채식주의자로도 5년이 지났다는 광고멘트와,

시적인 제목과

모호한 표지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표지에서 느꼈던 이 모호함이,

사실 책 전체를 덮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론,

상당히 미묘한 감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제목조차 모호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모호성은

작품 내에서도 이야기합니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건지, 정말 작별을 하지 않는건지.

작별을 마무리하지 않고, 기약없이 미루는 건지.

 

누군가 죽는다면, 

목숨이 즉시 끊어지는 건지, 

아니면 남아있는 전류처럼 느즈막하게까지 남아 흐르는건지

모르겠다는 문장처럼

작별도, 목숨도, 기억도, 만남도 모두 모호하게 묘사됩니다.

심지어 나중엔 주인공이 정말 살아있는건지도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표지 뒷편에 적혀있는 신형철님의 평으로는

이 모호함이 4.3.사건의 서술을 좀 더

감정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게 만든 장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 말을 읽고 나서야,

아 그랬나보다. 싶긴 하지만요.

 

줄거리는 간략하게 요약해지되, 

감상의 파편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는 건 그 이유일 것입니다.

 

줄거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작가, 경하가 있습니다. 

삶의 불이 점점 꺼져가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그 무게에 시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젠 거의 하나 남은 친구인 인선에게 연락이 옵니다.

제주도에서 목공일을 하던 그녀는,

실수로 손가락 2개가 한 마디씩 절단이 됩니다.

급하게 육지의 병원으로 넘어와,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경하에게 연락을 합니다.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에 있는 자기 집에 가주길 부탁합니다. 

앵무새를 키우고 있다고.

새는 몸집이 작고 몸이 가벼워,

며칠만 먹이와 물이 모자라도 쉬이 죽는다고.

지금 바로 가주길 부탁합니다. 

 

경하는 할 수 없이 제주도로 향합니다.

인선의 집은 제주도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데요.

눈보라가 무척 많이 부는 겨울,

빛이 잘 없는 밤,

길이 잘 나있지 않은 초행길.

인선은 말 그대로 죽을 뻔 합니다. 

가까스로 인선의 집에 도착했지만,

인선이 키우던 새는 죽은 상태입니다. 

 

새를 묻어주고,

몸을 녹이고, 잠을 한숨 자고 일어납니다.

그 때 인선이 집에 들어옵니다. 

인선이 환상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함께 허기를 채우고, 

인선의 공방을 돌아보고,

인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바로 제주 4.3.의 희생자로,

희생자의 가족으로,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간 투사로,

하지만 이내 치매로 스러진 엄마로 살았던

정심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년이 온다와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거대한 시대적 담론을 

개인의 삶에 녹여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취를 따라가기 쉽고,

그래서 더 커다란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다만 소년이 온다는

인물을 따라가는 묘사로

읽기와 이해가 쉬운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훨씬 더 

이미지 중심의 묘사가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훨씬 모호해집니다.

 

억지로 이어붙이자면

피카소 초기와 추상화가로서 작품을 

비교하는 느낌도 납니다. 

(소년이 온다 - 맨발의 소녀

작별하지 않는다 - 꿈)

하지만 뭐,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만큼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문장 읽기는 쉽지만 책을 읽기는 어렵고

이해하긴 어렵지만 동감하긴 쉬운 편입니다. 

찬찬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찾은 이미지는

눈, 죽음, 광주 운동, 4.3.사건, 엄마, 개인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중 저는 작가가 주제로 삼은 4.3보단, 

작가가 핵심이라고 이야기한 사랑보단,

삶을 더 느꼈습니다.

 

책은 정말 시종일관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경하는 커다란 상흔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고 있고

인선은 물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어 거의 죽기직전이었죠.

인선이 키우던 새는 결국 죽었고,

정심은 죽음의 덩어리 속에서 가족을 찾아헤메이구요.

 

하지만 책 속 죽음의 이야기가 

마냥 차갑지만은 않은 건, 

정심이 보여주었던 그 믿을 수 없는 인내와

죽음과 삶을 묘사하는 모호함 덕분인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는데요,

무덤덤히 죽음을 이야기하는 문장에서,

되려 삶을 더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미지 중심의 소설이라

산문시 읽는 느낌으로, 

차분히 가라 앉은 기분을 

좀 더 고요하게 바라보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책일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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