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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리뷰 -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 그 세 번째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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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문학동네, 2011

 

사진 : Gren de Klerk on Unsplash

 

책은 짧은 편지와 긴 이별 두 가지 단편으로 이어져있습니다.

다만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처럼 별도의 단편들이 한 책에 이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단편은 서로 이어지는 단편입니다.

 

각 편마다 사건도 크게 두 가지로 분리됩니다.

짧은 편지만을 써놓고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아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작가.

처음엔 혼자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인 클레어와 그녀의 딸과 동반 여행을 합니다. 

작가는 그들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되고,

마지막은 아내였던 유디트와 그가 무척 만나고 싶어했던 영화 감독인 존 포드를 만납니다.

 

책은 여전히 짧지만 지금 껏 읽었던 한트케 책 중에선 제일 읽기가 어려웠어요.

특히 각 단편마다 작가가 혼자서 일상을 보내는 부분의 글 들은 도통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회상하고, 후회하고, 3인칭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자기와 멀어지고, 무척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그러다 타인을 만나면 그 긴장감이 풀어집니다.

문장이 어려운 건 변하지 않으나,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 만으로도 글은 한층 읽기가 편해집니다.

 

그 순간 나는 자신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영원히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종종 어린애들이 경험하는 불안이라든가 대인 관계를 맺을 때의 불쾌함,
더 나아가 이해력이 갑작스레 떨어지는 경우 등을 생각해보니 불현듯 자부심이 생기면서 쾌감까지 느껴졌다.
나는 내가 그 모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를 더이상 원치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오히려 지금부터는 그 콤플렉스들을 배려하는 방법이나 생활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내게 적합하면서도 남들 또한 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삶의 방식을 말이다.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하나의 예행연습에 불과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건 클레어를 만났기 때문에 엄청나게 부드러워진 문장입니다.

그러니 작가의 문장을 씹어먹기 어려웠던 게,

굳이 저의 부족함이나 스마트폰으로 인한 난독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한트케의 책 중에선 이 책이 가장 어려웠어요.

책 뒤의 해설엔 현대인이 모두 공감할만한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데

문장이 너무 어려워서 공감도, 성장도 오롯이 느끼긴 힘들었어요.

 

하지만 타인을 만나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문장을 보며 다른 걸 느꼈습니다.

 

인간은 어쩌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고, 혼자서 정말 살아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 안정감을, 비교를, 동질감을, 위안을, 긴장을 받아야 

조금 더 연마되고, 깊어지고, 단순해져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든 증발해버릴 거 같이 위태로운 사람과 그를 그대로 투영하는 문장이,

타인을, 심지어 떠나버린 아내를 다시 만나는 순간에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는 걸 느꼈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알지 못하는 위안이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 느꼈습니다.

이 느낌 하나 때문에 독후감을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읽은 책 리스트에만 올려놓았을 거예요.

 

소망 없는 불행, 아이 이야기는 꽤 보편적인 편이었습니다.

상처입은 어머니 이야기, 나의 자식 이야기는 꼭 내 경험과 똑같지 않아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떠나버린 아내,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의 장기 거주,

이 모든 게 제 경험안에선 쉽게 떠올리기 어려워 문장마다 발 끝에 차였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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