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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자 이야기] 2장 하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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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한 큰 스튜디오에서도 프로젝트가 시작하는 시점이었어요.

인원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게임은 이동과 전투만 포함한 프로토타입이 막 나왔던 단계였죠.

 

다행히 게임 전체의 얼개를 기획하는 시점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기획자가 많지도 않은 때였죠.

 

참. 자세한 글에 들어가기 앞서 사람을 좀 소개해야 할 거 같아요.

실제로 이렇게 불렀던 건 아니지만, 의사 결정자들의 호칭도 좀 정리하고요.

실무자 > 팀장 > 본부장 > 사장

앞으로 쓸 글에서도 이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 개발의 주요 의사결정은 본부장님이 거의 다 했어요.

사장님은 게임 개발본부 + 사업부를 총괄하셨는데, 물론 사장님의 설득도 중요한 포인트였죠.

다만 사장님께서 본부장님을 많이 믿어주셨고, 본부장님은 기획팀을 많이 밀어주셔서 일 하는 내내 보람은 있었어요.

 

그럼 이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얼개 기획에서 다루었던 내용은 크게 5가지 정도였던 걸로 기억납니다.

 

사진 : Jon Tyson on Unsplash

 

1. 1차 출시 때의 PLC :

PLC는 Product Life Cycle의 약자입니다.

출시하고 첫 업데이트 전까지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즐기려면 얼마나 걸리도록 만들 것인지를 결정해요.

이때 고려했던 건 크게 3가지입니다.

- 게임을 출시한 후에도 예상하지 못한 버그들이 있을 것이다. 고칠 시간이 필요하다.

- 1차 업데이트를 준비하려면 예상 N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우리가 계산한 속도보다 딱 2배 정도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달성할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목표는 1년을 잡았어요. 이를 토대로 성장 곡선을 결정했고요.

게임을 다 만들고 나서 점검했더니 계산상으로는 10개월 정도가 나왔고,

실제 유저들은 6개월이 안되게 1차 콘텐츠를 모두 달성하더군요. 

 

2. 성장 방법 :

사실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죠. 

저희는 캐릭터와 장비 2가지에 성장 요소를 부여했었어요.

캐릭터의 성장 요소는 게임을 만들어가면서도 참 많이 바뀌고 추가되었어요.

다만 장비의 성장은 처음부터 본부장님의 방향성이 뚜렷했습니다. 

"획득과 성장은 쉽게. 그리고 다양한 장비를 모을 수 있는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장비를 모을 수 있는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게임이 나올 때까지 발목을 잡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였지만,

'획득과 성장은 쉽게'라는 목표는 그래도 참 일을 편하게 만들어줬네요.

 

성장 방법이 정말 중요한 건 아래 2가지 이유입니다.

- 플레이어들은 여기에서 가장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 그리고 중요한 Business Model(이하 BM)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 플레이어들과 게임 제작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여기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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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니크한 게임 요소 :

우리 게임의 주요 차별화된 포인트는 무엇을 잡을지 설정합니다.

저흰 2개의 포인트를 가져가자고 했었는데요.

하나는 거래에 관련된 시스템이었고, 하나는 집단 대규모 전투 콘텐츠였어요.

 

거래 시스템은 사장님의 요구사항이 뚜렷했어요. 

어떤 요소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그 당시에만 해도 우리나라 게임엔 잘 없는 요소였어요.

그래서 게임 안의 재화 시스템 상으로, 이용 방법에 대해서도,

심지어 법률상으로도 고려할 게 너무 많고 복잡했습니다.

기획자도 제대로 된 사용 흐름과 목적을 그리기가 어려운데

플레이어들은 얼마나 어려울지 엄청 고민됐죠.

기획팀 안에서도 심지어 본부장님까지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엄청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사장님을 상대로 설득도 참 많이 했지만,

웬만한 건 모두 들어주시던 사장님이 강하게 밀어붙이시더군요.

방향성은 뚜렷, 팀 모두가 납득하기 까진 조금 어려웠고,

시스템 상으로 잘 녹여내는 데엔 모두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획이었습니다.

이 녀석도 엄청나게 기획자들을 괴롭혔던 요소 중에 하나였어요.

 

집단 대규모 전투 콘텐츠는 말 그대로 목표가 뚜렷하죠.

시작부터 모두가 그리는 게 똑같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획을 시작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몰랐죠.

세부적으로 들어가니 기획팀 안에선 물론이고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사업부 등

누구 하나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던 게 없었다는 걸요.

 

4. 전투

클래스, 무기의 종류, 타격/피격 시스템, 타겟팅/논타겟팅 등을 고려합니다.

모바일 게임 특성상 혼자서 게임하는 게 어렵지 않으려면,

클래스 반영이 참 쉽진 않았어요.

그래도 무기의 종류를 디자이너들과 함께 결정하고,

그 뒤에 만들어주시는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진짜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타격/피격 시스템은 타격감과 자연스러운 동작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들과 엄청 애를 먹었던 요소였어요.

 

얼개를 만들고 난 후엔 전투는 담당 기획자가 따로 붙었어요. 

게임 엔진과 애니메이션에 이해가 있는 사람이요.

타격감이라는 게 피격 이펙트, 타격 이펙트, 동작(공격 혹은 주문 시전) 이펙트,  

동작 애니메이션도 주문 사용, 주문 시전, 공격의 시작과 끝 등

과장도 필요하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려면 진짜 많은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더라구요.

기획 진행과 디자이너 분들이 작업하시는 걸 옆에서 보면서 정말 감탄했던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5. 레벨

캐릭터의 레벨 말고 배경을 의미합니다. 

저는 처음에 레벨과 스토리 기획을 주로 하고 싶었는데,

더 잘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허드렛일을 돕는 정도로만 참여했어요.

옆에서 함께 일을 하며 보니 레벨을 잘 만드는 게 정말 쉽지 않더군요.

게임 내의 세게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기획자들이 출중하셨고,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분들이 워낙 뛰어나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셨어요.

레벨에 대한 개념을 쌓기도 좋았고,

서로 일을 잘하기에 무척 수월했습니다. 

 

레벨 기획에서 고려했던 점은 크게 3가지 정도였어요.

- 이 맵에서 풀어내는 스토리는 어떻게 되나

- 이 맵에서 진행하는 퀘스트 동선은 어떻게 되나.

- 필요한 배경과 오브젝트는 총 몇 가지인가. 최적화와 게임 퀄리티가 균형 잡힐 수 있는가

그저 세계관만 만들고 예쁘게만 만들면 될 줄 알았는데,

사실 시스템과 가장 많이 엮여 있는 부분 중에 하나였어요.

 

 

사실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하지만 이때가 가장 즐거웠어요.

진짜 고통은 디테일 기획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요.

 

기획팀, 본부장님, 사장님 등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진짜 많은 토론을 나누게 되는데요,

이 때 얻은 에너지와 서로의 신뢰로 프로젝트를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견을 나누다 보면 서로 얼마나 존중하는지, 열정적인지를 바로 알 수 있으니까요.

막내 기획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고

끝까지 설득(혹은 철저히 우기는...?)시키시던 본부장님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일치하는 의견, 나는 납득 못하는 의견, 나만 납득 못하는 의견들,

설득할 수 있었던 내 생각과 결국엔 버려야만 했던 내 기획들 속에서

게임을 만드는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순간이 참 즐거웠어서, 지금도 게임 만들던 때가 종종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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