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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자 이야기] 다섯. 회사가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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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게임을 출시하고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건 1주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규 유저 유입도 적고, 그 적은 유저를 대상으로 리텐션도 엄청 떨어졌어요.

이미 사전가입 마케팅이나 콜라보, 게임 리뷰 사이트 등을 대상으로한 마케팅은

모두 진행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신규 유저를 모객할 방법이 없는 상태였어요.

리텐션도 좋지 않아서 이미 유입된 사용자수를 불릴 수 있는 방법도 없었구요.

그렇게 게임을 내고 1주일 만에 대표님에게서 새 게임을 유지,

아니 회사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뭔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실패했습니다란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에요.

정말 한 순간에, 손 쓸 겨를도 없었거든요.

만약 제조 회사였다면, 서비스 회사였다면 마케팅이나 제휴를 통해 조금 더 버텨볼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반등의 여지 없는 모바일 게임은 정말 버텨낼 재간이 없어보이더라구요.

 

이 때 즈음으로 회사 대표님과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크게 실패하니까 실패로 부터 배울 게 없는 것 같다고.

성공했을 때엔 오히려 이것저것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그 말이 무척 기억에 깊이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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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잘 될 땐 확실히 약점과 강점을 구분할 수 있었어요.

속편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강점을 더 살려보자는 취지였으니까요.

그런데 크게 실패하니까, 모든 게 다 실패의 원인인 것만 같아 보이더라구요.

게임 구성도 너무 낡은 느낌이 나고,

사람이 많아져서 강점인 멀티 콘텐츠가 활성화 되었다고 해도 얼마나 오래갈지 의심이 들었어요.

심지어 최선을 다했고,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게임 디자인도 실패한 후에 다시 보니 너무 모자르게만 느껴졌어요.

정말 게임 곳곳의 요소들이 전부 미흡하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그리고 그런 게임의 기획자였다는 게 회사 식구들에게 무척 미안했어요.

제가 엄청 잘 했다면, 제가 특출난 센스가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란 죄책감이 엄청 컸어요.

개발자 분들도, 디자이너 분들도 모두 자기 몫 이상을 해주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제 역할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어요.

글로벌 진출에서 속편 제작으로 게임 방향성이 바뀌면서 개발기간이 길어지고,

그로 인해 회사에 남아있는 자본이 없다는 게 사실 제일 큰 문제였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짧게 수정하고 글로벌 도전을 했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타격이 있진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회사가 문을 닫기 전까진 대표님과 함께 우릴 받아줄 다른 게임 회사가 있을지,

혹은 펀딩을 해줄만한 투자자가 있을지를 열심히 찾았어요. 

회사를 유지할만한 국가 프로젝트가 있을지도 열심히 찾아봤구요.

두 달 남짓을 그렇게 돌아다녀 봤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어요. 

석달 째 되던 달, 저도 회사를 나왔어요.

텅 비어버린 회사 사무실 문을 닫을 때엔 만감이 교차한다는 의미를 알겠더라구요.

 

사진 : Masaaki Komori On Unsplash

 

돈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은 꽤 모여있었어요.

그럭저럭 한 사람 생활비로 몇달치 쓸 돈은 모아져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어요. 

안그러면 강제로 고향에 내려가야만 했었을 테니까요.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었어요.

 

이 때 사실 게임 만드는 건 그만 두려 했어요.

트라우마까진 되진 않았지만 실패한 게임의 기획자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그리고 그 당시엔 게임을 만든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체력도 체력이지만, 큰 실패 후에 얻은 죄책감이 꽤 컸었던 것 같아요.

20대 후반이긴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금 쉰 후 시험 준비를 하며 아예 대기업 신입으로 들어갈지,

이 경력을 살려 이직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려했죠.

 

이 때 쯤에 지난 회사에서 먼저 큰 스튜디오로 옮겨갔던 개발자 형이

자기가 있는 곳에 지원을 한 번 해보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그 스튜디오의 대표와 예전에 일한 적이 있는데, 참 재밌고 일 잘하는 분이라고 소개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그 분의 모토가 재미있게 일하는 거라고.

거절하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슴에 꽂힌 말이 하나 있었어요.

'사실 게임 만드는 건 진짜 즐거운 일이야.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미있게 일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그만 둘 땐 그만 두더라도 게임을 만드는 진짜 재미를 알고 이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다'

저 말이 엄청 설레더라구요. 

그래서 이력서를 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원래 안가려고 했으니까 떨어져도 다른 곳을 알아보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행히 이력서는 통과했고, 면접을 보자는 연락도 왔습니다.

그리고 기획팀장님, 대표님 면접도 통과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출근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저의 스타트업 게임회사 시절은 정말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아직 끝이 아니에요!!

이직한 메이저 스튜디오 이야기가 사실 본편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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