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 이야기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리뷰 -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게임의 모범

by GomdolKim 2019. 3. 3.
반응형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Sarepta Studio AS, 안드로이드/iOS, 2018


세계2차 대전이 끝난 시점의 노르웨이에서 당신은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게 됩니다.

음식을 만들고, 아이에게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잘 때 동화책을 읽어주어야 하죠.

원한다면 숨바꼭질을 하거나 함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형편이 그렇게 좋진 못해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는 일을 하며 생활비도 벌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안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고, 아이에게 들려줄 대답을 선택하는 게 게임의 메인 플레이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평범한 육성 게임은 아닙니다.

입양한 아이가 '레벤스보른'이기 때문입니다.


레벤스보른이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만든 인종개량 기관입니다.

우수한 독일 혈통을 가진 인구, 소위 아리아인을 늘리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죠.

선별된 독일 남성들은 정부가 선별한 여성들과 동침하고 이 여성들은 강제로 아이를 낳게 됩니다.

아리아인을 낳기 위한 이상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노르웨이 여성들은 특히 더 많이 차출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약 12,000명이라고 해요.


나치 입회 아래 세례식을 받는 레벤스보른 아이들입니다. 사진 : Lebensborn 영문 위키피디아



이 과정에서 낳아진 아이들은 대부분이 레벤스보른 기관에서 키워집니다.

우수한 인종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죠.

다만 2차대전의 종전 후엔 나치가 아이들의 부모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처분했고,

부모를 찾지 못하거나 부모가 원하지 않은 아이들은 대다수가 입양이 됩니다.

적국 독일인의 자식이라는 낙인과 함께요.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입양한 아이가 바로 이 '나치의 자식'입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가 훌륭하진 않습니다. 아이의 육성 피드백이 잘 설정되어 있진 않아요.

배고픔, 깨끗함, 안정감을 보살펴주게 되는데 이 느낌이 가득하거나 부족할 때의 표현이 극적이진 않습니다.

어떻게 플레이하는 게 잘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한 것이지요.

그리고 게임 안의 경제 생활은 밸런스가 잘 맞지않아요. 돈을 벌고, 가게에서 음식이나 선물을 살 수 있습니다. 

제일 싼 죽으로만 연명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상당히 돈을 아낄 수도 있어요. 

물론 이것 역시 제일 싼 죽과 제일 비싼 요리를 해 먹을때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밸런스가 무너진 것입니다.


하지만 단점이 많아도 역사의 비극을 그렸으니 참고 해보길 권하는 건 아닙니다.

이 게임은 정말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사건의 배경과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도 무척 영리합니다.

가진 건 잽 밖에 없지만 어떻게 해야 턱 밑에 꽂아넣는지를 알고 만든 게임이에요.

게임 후반에 갈수록 먹먹한 마음에, 어떤 장면에선 눈물이 조금 나기도 합니다.


슬픔에 대한 감수성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작사가 게임이란 플랫폼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에서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교감을 나눈다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디자인은 포기한 것 같은 이 게임도 아이의 표정만큼은 얼마나 풍부하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빠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모두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합니다.

아이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 너무 빨리 떠나게 되어버리죠.

아이가 겪는 무서움, 슬픔, 상실감이 표정에 그려질 때엔 너무나 큰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울먹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내 아이나 내 동생이 우는 것인듯 가슴이 저며옵니다.


차별을 받는 모습, 아이가 차별받음을 느끼고 슬퍼하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게임의 정해진 일과시간 안에선 이렇게 아이와의 교감에 주로 신경을 씁니다.

자세한 사회적 배경 설명이나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부모로서의 고민, 친부모와의 갈등 등 어른의 상황은 뉴스, 일기, 편지로 전달해주어요.

조금 천천히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그 배경지식들이 아이를 키우는 데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구요.


마무리를 하기 위해 뻔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자면 확실히 게임은 책이나 영화와는 다른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책으로 나왔어도 좋았을 거예요. 한국어로 번역이 안됐을 뿐 레벤스보른을 다룬 책도 많이 있구요.

어떤 장르였든 상관없이 똑같은 슬픔,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다만 사건과 한 발 떨어진 곳에서 타자로서 느끼는 감정과, 게임 속 인물과 교감하며 직접 느끼는 감정은 확실히 충격의 크기가 다르네요.

그리고 이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어루만지는 게임이라면 확실히 더 큰 전달력을 가집니다.

정말 많이 슬펐어요.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때의 상황이 궁금하긴 한데, 쉽게 다시 플레이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만큼이요.


총 6개의 챕터로 전체 플레이 시간은 4시간 반 남짓 걸렸습니다.

책 한 권 읽는다는  느낌으로, 조금 긴 장편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느낌으로 이 게임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반응형